마지널리티
사이즈 : 136*203
책소개
저자소개
이정용 (저자)+
한국에서 태어나 6ㆍ25 전쟁 직후 미국에 건너가 핀들레이 대학과 개렛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오터바인 대학과 노스다코타 대학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가르쳤고, 1989년 이후 드루 대학교 조직신학 정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6년 10월 9일 소천했다. 1971년에 풀브라이트 재단지원으로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1979년부터 미국종교학회 산하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드루 대학교 내 한국신학연구원을 창설했다.
서양 문화의 한복판에서 동양을 호흡하며 한국신학의 꽃을 피웠던 그는 삶의 정황과 맥락에서 경험한 것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신학을 정립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이란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자기 삶의 일부인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해하려는 자기 이야기다. 그래서 신학이 철저하게 ‘자서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서로는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시는 하느님》, 《우주적 종교》, 《역의 신학》, 《아시아 관점에서의 삼위일체》등 20여 권이 있으며, 5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신재식 (역자)
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 조직 신학 교수. '과학' 문화 속에서 '한국' 신학을 고민하는 신학자이며 목사이다. 현재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 프로그램 매니저, 한국종교학회 상임 이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종교 전쟁>(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근대 신학의 이해> 등이 있다.
목차
추천사
_정진홍,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이정용 선생님은 일생을 낯섦과 부닥치며 살았다. 북녘에서 남녘으로 옮긴 피난살이가 그러했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긴 유학생활이 그러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다 그만두고 신학을 한 것도 또 하나의 낯섦으로의 옮김이었고, 신학을 하면서도 서양전통을 넘어 동양의 사유를 새삼 살펴 신학 전통을 되 지은 것도 낯섦과의 만남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일상의 삶을 미국사회의 소수민족들을 위해 헌신한 것, 여성에 대한 관심을 남달리 기울인 것도 낯섦을 안고 산 모습이었다. 《마지널리티》는 그의 이러한 ‘낯섦과의 만남’이 발언하는, 저리게 정직한 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낯섦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다문화 정황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을 통해 새삼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을 구축할 수 있고, 나아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까지 모색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이 저서는 그분이 우리 신학계에 남겨준 시의적절하고 귀한 유산이다.
책속으로
[_20쪽]
신학은 자서전적이다. 그렇지만 신학은 자서전이 아니다. 내 신학은 단순히 내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내가 걸었던 신앙의 여정 이야기다. 내 신학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만들고, 기르고, 이끌고, 사랑하고, 나이 들게 하고, 생을 마무리하게 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내 신학은 내가 속한 공동체, 자연환경, 시간과 역사, 믿음으로 받아들인 존재의 궁극적 실재와의 관련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내 이야기다. 내 신학은 하나님이 내 삶과 내 삶의 일부인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해하려는 내 이야기다. 이것은 내 삶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며, 이 성찰은 시, 비유, 이야기로 말해진다. 신학은 확실히 자서전적이다. 왜냐하면 오직 나만이 내 신앙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서전은 아니다.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 자체는 신학이 아니라 신학을 위한 하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말 내 신학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맥락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한 신학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신학이 맥락적인 것이라면, 분명 자서전적인 것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_ 28쪽]
민들레가 뿌리내린 땅에 또 다시 봄이 왔다. 겨울 동안 민들레는 뿌리를 튼튼히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번에도 튼튼한 뿌리가 되었고 마당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민들레는 이번에는 집주인이 기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다시 민들레를 뽑아냈다. 그러면서 “푸른 잔디밭에서 노란 색을 보는 것은 정말 싫어”라고 말했다. 마침내 민들레는 주인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노란 색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민들레는 자신의 노란색을 보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에게 “잔디의 푸른색으로 동화되어야 해”라고 말했다. 자신도 살고 주인도 기쁘게 하기 위해 민들레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마당의 다른 식물들처럼 민들레도 푸른색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민들레는 뽑히지 않고 한 해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
[_ 194쪽]
교회는 하나님의 주변부 백성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주변 중의 주변인 예수-그리스도의 현존을 의식하기 때문에, 주변부 사람들의 다른 공동체와는 다르다. 그들 가운데 있는 예수의 현존을 의식하는 바로 교회의 핵심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주변 중의 주변이기에 주변에서 현존하며, 중심 중의 중심에서는 빛을 잃는다. 중심 중의 중심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주변과 거리를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존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따라서 중심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현존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난하고, 무력하고,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은 쉽사리 자연스럽게 주변 중의 주변인 예수의 현존을 느낀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한 주변부 사람들은 새로운 주변부 사람이 된다. 이처럼 교회는 새로운 주변부 사람들의 공동체로, 진정한 형제/자매의 교제가 있고, 창조의 본래적 질서가 회복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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