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 : 140*209
책소개
“여행은 왜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가?”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유 이상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예수와 바울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중세 순례자에서 오늘날의 범지구촌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층위에는 다양한 종교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여행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단일 지구촌 연결망과 전 세계 여행로의 확장으로 종교적 만남이 풍성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관광, 방랑, 순례, 이주와 같은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여행자와 방문지 주민의 힘의 격차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또 풍부한 여행담을 인용하며 여행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음을 실증한다. 여행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 의미 있는 여행, 하나님과의 참신한 만남으로 이끄는 실제적 방법을 소개한 책!
저자소개
홍병룡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IVP 대표 간사로 일했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와 기독교학문연구소, 호주 국립대학에서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는 《거룩한 그루터기》, 《성경 번역의 역사》,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그리스도인의 미덕》, 《전도, 그 뜻밖의 모험》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_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1. 길 위의 경험_여행, 관광, 이주
관광
이주
여행의 두 가지 관점
2. 길 위의 신학_여행에 관한 신학적 사유
구약 성경의 여행
신약 성경의 여행
여행하는 하나님, 믿음의 여정
3. 길 위의 도전_순례자와 방랑자
순례의 길
방랑의 길
순례와 방랑
4. 종교 관광을 넘어
양방향 통행
그들 속으로
충격적인 차이 극복
도시사역이라는 대안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기
5. 지향점을 가진 여행_저항과 재구성
여행과 현대신학
여행과 권력
여행과 저항
나가는 말_이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주(註)
추천사
김기석, 흔들리며 걷는 길 저자
예수는 자신을 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이들은 그 길을 걷지 않는다. 찬미할 뿐이다. 안락한 집을 떠나 길 위에 선다는 것은 불편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변화의 가능성을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경계선들을 가로지르는 동안, 여행자와 순례자는 주류질서가 만들어놓은 강고한 체제에 틈을 만든다. 그 틈 사이로 하늘 바람이 불어온다. 요르그 리거는 우리가 잊고 있던 참 자유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임영신, 평화는 나의 여행 저자
우리가 관광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 그들과 연대를 맺고 자신의 통제권을 포기하는 진정한 여행을 한다면, 그 여행은 이미 ‘신학적 저항’이자 현실을 재구성하는 ‘행동’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잠시 삶의 바툰 걸음을 멈추고 나의 여행이, 혹은 삶이 관광의 걸음인지 순례의 걸음인지를 깊이 살피게 한다. 우리가 관광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걷는다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 함께 길을 나설 때 마주치는 상황, 우리가 공동으로 고통을 느끼는 상황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상황에 몸담고 여행을 하신다”는 그의 문장을 통해 ‘이제 나와 함께 여행하자’시던 그분의 뜨거운 초대를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깊은 영적 순례를 경험한 소중한 여정이었다.
책속으로
[12-13쪽]
여행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여행 없이는 그 진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대-기독교 전통 가운데 실제로 길 위에서 발전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자. 신앙의 기둥으로 꼽히는 아브라함에게 정적인 면은 거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관계를 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친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이상한 여정을 통해서였다. 이스라엘 백성도 길 위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집트라는 낯선 제국 땅에서 노예생활, 이집트에서 탈출,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방황으로 구성된다.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중요한 교훈들을 배웠는데, 그중에는 달갑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따라잡지 못한 하나님 형상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심화 같은 것들이다. 훗날 유다 백성은 또 다른 제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는데, 포로로 있는 동안 근본을 뒤흔드는 참신한 신학적 통찰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창조에 관한 성경 자료의 상당 부분이 이 포로 시기에 만들어졌다. 즉 포로 상태에 있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 강대국에 종속된 분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또 다른 사회를 허락하신 세계의 창조주임을 깨달은 것이다.
[66-67쪽]
길 위의 신학이 중시하는 질문은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하나님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어디에서 움직이고 계신가? 우리가 하나님의 여행지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나를 따르라”는 옛 초대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질문의 차이점이다. “하나님은 우리 편인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편인가?”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신학자들은 보통 전자에 긍정적으로 답변한다. 이에 반해 후자는 훨씬 더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답변할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항해가 필요한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묻는 질문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된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편안히 거하신다고 상상하며 건물 속에 하나님을 위한 방을 마련해주면 그만이다. 여행이라도 떠날 때는 하나님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종교 여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119쪽]
단기 집중여행과 선교 여행이 실패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선한 의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실패의 이유는 종종 지나치게 선한 의도와 관계가 있다. 선의를 품고 타인을 동등하게 대하긴 하지만 그보다 깊은 차원의 불평등과 권력상의 격차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고 불평등을 의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타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은 셈이다.
[132쪽 ]
여행이 저항 행위가 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현상을 뒤흔드는 여행의 속성과 결부되어 있다. 방학이나 공식 휴가 여행은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원과 애완동물과 친구들을 놓아두고 떠나거나 아파트 문을 잠그는 단순한 행위조차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일이나 거주지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은 손을 놓고 떠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이 저항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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