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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길이 되다 / 이원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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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길이 되다 / 이원식 저

사이즈 : 150*210mm


※누르시면영상이나옵니다※



140년 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말이 되었다


선교사보다 한글성경이 먼저 들어온 나라

세례를 받기 위해 선교사를 요청한 나라

자발적 사경회를 통해 부흥한 나라

이 특별한 나라에 나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하나님이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말씀하시기 시작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은둔과 미지의 나라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의 품에는 한 권의 성경이 있었다. 그 성경은 특별히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었다. 선교사가 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후 성경을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선교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미 번역된 한글성경을 들고 이 땅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정식으로 선교를 시작한 땅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그 한글성경은 누가 번역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한글성경과는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미 조선 땅 한양에 퍼져 있었고, 그 한글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1885, 미국에서 요코하마를 거쳐 제물포로 들어와 선교 사역을 시작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스크랜턴(William Scranton) 모자는 세례를 줄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인들을 만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한글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미 또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 땅에 있다니도대체 이 성경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 2천 년 선교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이 놀라운 한글성경 전래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것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왜 두 가지 버전의 성경을 번역하게 하신 것일까? 그리고 그 두 버전의 성경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유독 이 땅, 이 민족에게 그런 기적을 베푸셨을까? 하나님은 과연 이 땅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셨던 것일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성경 번역 가운데 일어 난 놀라운 기적과 그 기적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추적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한글성경이 어떻게 번역되고 전파되었는지, 한국, 일본, 중국의 역사 현장을 누비며 생생한 현장 취재로 작성되었다.

- 본문 중에서

 

 

 

* 저자 소개: 이원식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장편영화 <외출>, <행복>, <무방비 도시>, <누나>, <북 쪽에서 온 여행자>, <뽀로로 극장판>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탈북자 인권영화인 <북쪽에서 온 여행자><자매별곡>, 기독교 장편영화인 <누나> 등은 제작과 감독을 맡았다. 그 중 <누나>는 제37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관심을 끌었다.

현재 영화 프로듀서이자 작가인 아내와 함께 세상에 하나님 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정감 스토리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3부작 장편 다큐멘터리인 <그리스도의 길이 되다>와 선교 동화를 만들고 있다.

저자는 아내와 세 딸을 두었으며, 강동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다.

 

* 목차

1

기적의 시작

조선과 청()의 국경 고려문을 통해 성경이 전해지다

예비하신 주의 일꾼, 의주 상인

한글성경을 위한 불씨, 존 로스와 토마스

한글성경 번역의 태동, 잉커우

우리말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또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

말씀이 말씀이 되다

부흥

성경책 한 권 들고 선교를 떠나다

한국과 네팔 T부족의 평행이론

통일과 회복, 그리고 유라시아를 향해

 

 

* 추천의 글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한글성경이 먼저 번역된 것은 이 땅, 이 민족의 부흥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고 은혜였다. 과거 역사로 잊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발자취를 찾아 되살리고 다시 부흥과 회복을 기대하는 이원식 형제님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암울한 시대에 번역된 한글성경을 읽고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뜨거움이 성경을 읽는 나와 모든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임하기를 기도하게 된다.

강규철 신광교회 담임목사

 

사진이나 영상으로 나올 줄 알았던 코리안 바이블 루트-그리스도의 길을 가다가 글로 나왔다. 일찍이 이 감독의 사진과 영상 실력을 알고 있었지만 글로 그의 솜씨를 대하는 것은 또 다른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 땅의 선교 역사와 성경의 관련성을 온몸으로 더듬어 찾아 나선 용기도 대단하지만, 손으로 써 내려간 지나간 역사 현장과 거기에 곁들인 사진들은 당장에 달려가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특별한 선교 역사로써 대한민국, 즉 이 민족의 특별한 사명이 어디로부터 시작되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이 책은 지금 내가 선 곳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먼 길을 떠나서 맞닥뜨린 믿음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촘촘하게 엮은 사실 위에 상상을 버무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직조함으로 감동을 안기는 책, 글도 이렇게 멋진데 영상은 얼마나 멋질 것인가?

김상철 GBT성경번역선교회 동원훈련부대표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더불어 다음 세대에게 직면한 통일 시대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믿음의 세대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시대를 바라보는 해석과 진단이 지나치게 넘치는 이 시대에 복음이 통과한 길목을 복기(復棋)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시도다. 140여 년 전, 이미 시작된 코리안 바이블 루트는 그리스도의 길이 되어 준 믿음의 선배들과 그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들려준다. 하나님의 사랑이 깊숙이 흘러 들어간 길을 따라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는 이 여정이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곽상학 온누리교회 교육목사

 

이 책을 열면,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이 타고난 이야기꾼과 함께 코리안 바이블 루트 현장을 걸어가는 것만 같다. 세계열강의 세력 다툼이 있던 격동의 조선 말과 가슴 저리는 대한제국을 거쳐 오늘의 선교대국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한글성경 번역이라는 중심 주제를 붙잡고 도도한 감동의 물결로 흐른다. 이제 말씀이 너무나 읽고 싶어진다.

노치형 강동온누리교회 담당목사

 

 

만주와 일본에서 각기 번역된 한글성경은 다양한 계층과 폭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이 땅에 널리 퍼졌고, 사경회를 통해 평양대부흥을 이끈 초석이 되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계획을 감동적으로 따라간다. 우리 민족의 통일로 이뤄질 유라시아의 화해와 회복, 그리고 열방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가 가슴 벅차게 기대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중요성, 그리고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일하심을 경험하게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무엇보다, 우리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님과 믿음의 선배님들이 헌신했는지를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본문 맛보기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겪을 때, 삶이 힘들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상실했을 때, 절대적 존재에게 존재 이유를 묻고 싶어 하는 것처럼 백씨 역시 아마도 그 이유를 그가 읽고 있던 책 성경에서 찾으면 좋겠다는, 그런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1874년의 어느 가을, 고려문에서 있었던 백씨와 존 로스의 만남은 놀라운 기적의 시작이 되었다.

왜냐하면 후일 그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되었고, 그 한 사람을 통해 의주의 여러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되었으며, 그들을 통해 최초의 한글성경이 번역되었고, 지역이 그리고 나라가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시간이라는 당신의 영역 가운데에서 수없이 많은 하루하루의 어느 하루에,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의 간절한 만남을 통해 민족을 변화시키는 계획을 이행하고 계셨다.

백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가져온 성경을 그의 아들에게 주었는데, 그의 아들은 몇 년 동안 그 성경을 읽고 감화되어 아버지에게 성경을 건넨 그 외국 선교사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존 로스 선교사를 만나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인쇄된 성경을 들고 지금의 북한 땅 의주를 거점으로 주변 지역에 성경을 퍼트리게 되었다. 그는 갖은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전 재산을 잃고도 성경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조선의 사도 바울로 불리는 백홍준이다. 34-35P

 

산성을 내려와 후문 쪽 출구로 나서기 전에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보과(一步跨)라는 한자가 새겨진 것이 눈에 띄었다. ‘한 걸음만 가면 닿는다라는 뜻으로 조선과 중국의 거리를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 한 걸음을 그때나 지금이나 떼기가 어렵다. 의주 상인들은 그곳에서 강을 건너 고려문에서 장사를 했고, 번 돈 혹은 구입한 물건을 갖고 다시 의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성경을 품에 안고 다시 의주로 돌아가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미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많은 천주교인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서양 사람과 접촉한 조선인도 처벌을 받았고, 성경을 반입해 들어오다 붙잡히면 갖은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때의 시대 상황이 그렇게 어두웠다.

손에 닿을 듯한 땅, 왜 우리는 저곳에 갈 수 없는 것일까? 마음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아픔, 분단의 치명적인 상처를 경험한 이 민족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때,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될 것이다. 45-46P

 

또 한 명의 의주 사람이 있었다. 백홍준과 함께 의주를 떠나 진리를 찾아 잉커우까지 간 백홍준의 동향 친구다. 그 역시 조선인 최초의 세례자이며 성경 번역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매킨타이어는 성경을 전해 듣고 세례를 받고자 한 이 청년을 보고 기쁜 동시에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복음을 듣고 복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기쁜 일이나, 당시 조선에서는 서학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 사형에 처해졌으므로 자칫 의욕만 앞선 섣부른 판단이 아닌지 염려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매킨타이어는 세례 받길 원하는 그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그에게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한 것인지 그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그 의주 사람에게 세례를 받고자 한다면 고향에 돌아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오라고 했다.8 그러자 그는 1월의 칼바람과 영하 수십의 추위를 뚫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매킨타이어는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가 부모의 허락을 꼭 얻어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여 주시길, 그리고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비하심이었을까? 그는 끝내 세례를 받기 위해 매킨타이어의 요구대로 부모의 허락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여태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고통스런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도(), 그 진리를 발견한 이름 모를 그는 그렇게 영하 수십를 오르내리는 만주의 눈보라를 뚫고 왕복 600km 가까운 거리를 다녀온 것이다. 오늘날 발달된 도로 사정으로도 1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다. 당시 도로 사정과 열악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족히 240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하루 8시간씩 걷는다고 했을 때 왕복 30일이 걸리는 거리다.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손과 발은 꽁꽁 얼어 갔고, 얼굴은 칼바람으로 아팠을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경에서 읽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세례 받기로 결심하기까지 숱한 고민의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셨을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위대한 능력을 발휘해 나쁜 놈들을 혼내 주고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왜 예수님은 바보처럼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고 그 고통을 감당하셨을까? 나는 지금껏 이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끝내 버리는 도를 찾지 않았는가. 그런 강한 힘과 능력과는 거리가 먼 예수님이 과연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서양 신을 믿어도 될까?

그가 그런 고민을 했든, 아니면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 강권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든, 그는 예수님의 사랑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결국 그 여정을 끝내고 조선인 최초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54-55P

 

나는 잉커우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한 뒤, 시내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잉커우기독교회로 향했다. 1879년 조선인 수세자들이 세례를 받은 교회는 우장장로교회인데 그곳은 1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잉커우기독교회가 세워졌다. 잉커우기독교회는 중국 삼자교회로 중국 정부의 감시를 받는 교회다. 중국은 아직 기독교의 포교와 전도가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두 종류의 교회가 공존하고 있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삼자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교회다.

어쨌거나 나는 그곳에서나마 당시의 조선 사람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세례를 받았던 그때를 묵상하고 싶었다. 그들이 그 먼 길을 가서 세례를 받고자 했던 그 마음, 그 절박함이 무엇이었는지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글성경을 번역하면서 어떤 감동을 받았을지 떠올려 보고 싶었다.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들은 동시에 한글성경의 최초 번역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례 받기로 결심했을 때 극심한 고난을 각오했을 것이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만큼 그들은 간절했고 절박했다. 오늘날은 성경이 흔하고,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이 편리해졌지만, 성경의 의미와 세례의 의미를 잃어 가는 안타까운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들이 성경과 세례에 대해 가졌던 마음, 그 간절함과 절박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간절함과 절박함은 지금의 한국 교회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이기에 그렇다. 80-81P

 

1회 조선장로교총회의 첫 안건은 무엇이었을까? 교회를 크게 짓는 것이었을까? 전도 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세웠을까? 놀랍게도 총회가 조직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선교사 파송이었다. 블레어(W. Blair) 목사는 새로운 한국 교회(장로교)의 첫 모임(독노회)은 사실상 선교사를 보내는 모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식민지 상황에서 세워진 한국 교회는 놀랍게도 가장 먼저 선교를 꿈꿨던 것이다. 해외 선교사 파송에서 성경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많은 장로교 조선 사역자들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했거나 공부하고 있었다. 평양신학교는 네비우스 선교정책과 관련하여 설립되고 육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네비우스가 강조한 사경회 제도의 연장선상으로 신학교 커리큘럼이 짜였다. 한글성경 보급을 통해 하나님을 이미 깊게 만난 한국 교회의 영성은 이렇듯 사경회를 통해 자라났다.

1913년은 나라를 빼앗겨 일제의 식민 통치가 행해지던 때다. 더구나 당시 조선장로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단이었으며, 복음을 받은 지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중국으로 복음을 들고 나간 것이다. 선교적으로 볼 때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 동양인이 선교를 나간 일은 없었다. 조선이 처음이었다. 조선은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동양에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였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순간이었으며,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 등에 있던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파견된 선교사는 있었지만, 한인이 아닌 타국의 사람을 위해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한 일은 당시로선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중국으로 파송되었다.

1912, 가장 먼저 파송이 결정된 박태로 선교사는 당시 큰 교회의 목사였다. 교인 100여 명의 재령 읍교회 위임목사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형 교회 목사로 그는 영향력 있는 노회 임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총회의 명령에 따라 선교사로 떠난 것이다. 188-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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