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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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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한 개혁주의 젊은 목회자의 도전적인 성경 사랑 이야기
-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어느 날 제게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라는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의 원고가 전달되었습니다. 원고를 읽어 가는 동안 점점 저자의 글에 매료되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대하며, 현재 한국 교회에 유행하고 있는 많은 대중적인 성경 이해 중에서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 내며, 문맥과 바른 신학에 근거하여 오류를 바로잡아 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저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저자가 무명의 젊은 목회자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저자는 현재 개척 교회를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단독 목회자이지만 원고를 집필한 때는 부교역자로서의 사역을 하던 때였습니다. 이름난 신학자나 유명한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저는 이 글의 저자에게서 보통 평범한 목회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한국 교회 목회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희망의 등불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윤석준 목사의 성경 연구와 성경 해석 그리고 성경 전달은 한국 교회의 모든 목회자에게 일종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요즈음 목회자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위한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나면 국내에서 신학 석사(Th.M) 과정을 공부하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고, 신학에 대한 더 풍부한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더 많이 하고자 하는 열정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목회학 석사 과정의 졸업만으로는 성경 해석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설교와 목회 사역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가방끈을 늘려 자신의 학력 간판을 좀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 목적에서 상급 학교를 진학하려고 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점점 고학력을 추구하는 것이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데 윤석준 목사는 목회학 석사 과정의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학력이 전부입니다. 요즈음 흔한 신학 석사나 목회학 박사(D.Min) 학위도 없고, 외국 유학도 다녀온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전하고 건강한 신학적인 토대 위에서 행해지는 윤석준 목사의 성경 이해와 해석은 아주 건실합니다. 이는 윤석준 목사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개인적인 독서와 독학으로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읽고 생각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자신이 다니고 있던 신학대학원이나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현장에서 꾸준히 전달하고 발표하고, 또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과정을 통해 목회자로서 가져야 할 바른 성경 해석과 바른 성경 전달의 내공을 착실히 길러 왔습니다. 저는 윤석준 목사의 이러한 자세가 대다수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들의 자세여야 하고, 또한 현재 목회를 하고 있는 현직 목회자들의 태도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의 계속적인 학위 과정의 공부나 유학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분명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적인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찬성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방끈의 길이가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성경을 바르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목사의 수준은 성경을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을 얼마나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목사의 성경 이해 수준만큼 교회 성도들의 성경 이해 수준이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며,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곧 교회의 영적 성숙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목회자가 상급 학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건, 개인적으로 독학을 해서 공부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점점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윤석준 목사도 앞으로 기회가 주어져 외국의 저명한 신학교로 유학을 가서 하고 싶은 공부만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도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목사를 양성하는 최소한의 교육 과정인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것만 가지고도, 또한 한국에서의 개인적인 독학과 경건의 실천만으로 건강하고 바른 목회자의 소양을 쌓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에 대해, 저는 이 책의 저자인 윤석준 목사는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책의 성경 해석들은 모두 개혁주의적 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교파나 교단에 따라, 개인적인 수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교리나 본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모든 해석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누구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최종적인 판단은 역사의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 불리는 신학 전통 안에서 가장 풍성하고 균형 잡힌 성경 해석의 열매들이 맺혔습니다. 윤석준 목사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구속사적 성경 해석 방법을 바른 성경 이해의 열쇠라 믿으며, 그동안 이러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전통을 따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윤석준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개혁주의적 구속사적 해석의 전통에 입각해서 현재 한국 교회 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잘못된 성경 해석, 불건전한 성경 해석 등을 바로잡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란 사실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 서 있는 학자나 목회자 사이에서도 개별적인 성경 본문 해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개혁주의적 신학 전통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있는 분들도 이 책에서 다루는 윤석준 목사의 성경 해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의 성경 해석과 100퍼센트 동일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른 성경 해석과 틀린 성경 해석, 수준 높은 성경 해석과 수준 낮은 성경 해석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면에서 윤석준 목사의 개혁주의적 바른 성경 해석의 추구는 그 결과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앞으로 이 책에서 윤석준 목사가 보여 준 것처럼 건전한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하여 바르고 풍성한 성경 해석과 전달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 내에 우후죽순처럼 배출되기를 소망합니다.

[들어가는 글]

몇 년 전에 교회 주보에 올릴 예화를 찾다가 예화관련 사이트에서 ‘백혈구 예화’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예화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우리 몸의 핏속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백혈구는 우리 몸에 들어온 침입자(병균)를 물리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화학약품을 쓰는 것도 아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침입자를 품에 꼭 껴안을 뿐입니다. 백혈구에게 안긴 침입자는 백혈구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냥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껴안아 주는 백혈구의 사랑. 놀랍지 않습니까?’
이 예화가 매우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리플을 달았습니다. ‘백혈구는 병균을 사랑하여 안아 주는 것이 아니라, 병균을 공격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병균도 감동하여 녹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입니다. 백혈구가 병균을 공격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도 이웃이 나를 향하여 공격할 때, 가서 살포시 그 사람을 죽여 버려야만 합니까? 백혈구가 하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예화는 전형적인, ‘내용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은혜라는 목적에 끼워 맞춰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묻고 싶었던 것은 ‘감동이나 은혜라는 감정은 반드시 옳은 상황, 곧 진실에서만 의미가 있다’, ‘거짓 진리에 기반한 은혜는 진짜 은혜가 아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글에 리플을 달았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사람들이 이 단순한 명제, 즉 ‘예화조차도 전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맞아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저의 리플에 추가적으로 달린 다른 사람들의 리플은 저를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주 소수의 찬성을 제외하면, 거의 대다수의 이후 리플들은 ‘은혜만 받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 ‘너무 까칠한 것 아니냐?’, ‘저는 너무 은혜받았는데 님은 사랑이 메말랐나 봐요’……라는 종류의 리플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척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울했습니다. 그때서야 깨닫게 된 현실은 제가 앞에서 전제했던 내용, 즉 ‘설교가 되었건 예화가 되었건, 사실에 토대해야만 은혜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저의 아주 작은 전제가 한국 교회의 일반 성도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때 발견한 사실은 일반의 성도들에게는 ‘진리’ 따위가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것이 진리이건 아니건 그 사실 여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거짓 설교와 거짓 성경 해석이 횡행하는 이유는 실은 ‘거짓이라 할지라도 은혜만 받으면 된다’고 하는 비진리에 대한 성도들의 뿌리 깊은 공통된 의식적 배경이었던 것입니다.
이전까지도 한국 교회가 말씀을 이해하는 양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 작은 에피소드 하나는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이 101가지나 되는 글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는, 너무 뿌리가 깊어서 그 뿌리를 캐내기조차 힘든 무서운 대적이 하나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이 뭐라 말하든 내가 그것을 통해 은혜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말씀의 진의’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국 설교도, 교회 생활도 실용주의로만 나아가게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더라도 성도가 감동받지 못한다면 ‘나쁜 설교’, 연구가 부족하고 말씀의 진의와 좀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성도가 크게 감동받으면 ‘좋은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살피고 사랑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가 의미를 함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성도든, 목사든, 누구건 간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을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드러나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중’이지 ‘우리의 실용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의중을 덮어 버릴 때, 성경은 왜곡되거나 손상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안에는 이런 악한 움직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위에 범람하는 설교들과 말씀을 나누는 성도들은 ‘본문의 정확한 뜻’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본문의 정확한 의미가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느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해석이 틀렸을지라도 은혜를 끼친다면, 그것을 향해 ‘틀린 해석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혹여 누구라도 ‘그 말씀은 사실은 이런 뜻인데요……’라고 말을 꺼낸다면,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은 ‘머리만 크고 은혜는 말라 버린 사람’, ‘학문에 치중하여 가슴이 뜨겁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설교에 대해 토를 달거나 진의를 물으려고 하면, ‘은혜받을 생각하지 않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안티’ 취급을 받습니다. 소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은혜받을 생각이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걸려 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오해의 책’입니다. 우리가 교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오해들, 성경 말씀이 언급되고 설교되고 있으나 틀리고 잘못된 것들, 교회 생활 속에서 굳어진 전통이 되어 버렸으나 성경의 진리가 아닌 것들…… 이것들이 이 책 전체의 목적 대상입니다. 이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 진실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악순환과 선순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악순환이란, 목사가 가짜 설교를 하면 성도가 그 가짜 설교에 익숙해지고, 가짜 설교에 익숙해진 성도는 다시 자기 교회에 목사를 청빙할 때 진짜 설교를 하는 목사 대신 가짜 설교를 하는 목사를 부르게 되고, 다시 그 가짜 목사 때문에 성도는 더 가짜 설교에 익숙해지는 악순환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선순환’을 이루어 내는 방법뿐입니다. 목사가 바르게 가르치면, 성도가 바른 말씀을 통해 바른 성도가 되고, 성도가 바른 말씀을 가지게 되면 이전의 바른 말씀을 가르친 목사가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그 교회는 다시 목사를 청빙할 때 아무나 선택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시 바른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를 청하게 되고, 다시 그 바른 목사를 통해 성도가 더 바른 성도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순환은 반드시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가 먼저 바른 말씀을 가르침으로 악순환을 끊을 수도 있고, 성도가 바르게 성장하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의 한국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에게도 달려 있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성도들에게도 동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 위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는 목사 아래에서 건강한 교회가 자라게 됩니다. 또한 건강한 교회에는 말씀을 중시하지 않는 목사는 설 수 없습니다. 즉 우리 모두의 진지한 말씀 사랑만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거룩한 교회로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이 책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말의 구조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몇 번을 읽으면서 수정을 가했습니다. 실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전하려고 하는 책이 말씀보다 더 어려워서는 곤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각주를 줄였습니다.
혹여 여기에 제시된 내용들에 대해 조금 더 전문적이고 신학적인 필요가 있다면, 해당 주제들에 대한 모든 토론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들이 동원되는 일은 기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행하실 일들을 기대합니다.

[지은이] 윤석준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신학대학원(M.Div)에서 공부했다. 대학 재학 시절 학생신앙운동(SFC)을 통해 개혁교회와 구속사 성경 연구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이후 화란 개혁교회를 모델로 하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를 세우는 일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여 화란, 캐나다, 호주 개혁교회들에 대해 공부하고 국내에 소개하고자 한다. 더불어 참된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와 연구에 비전이 있다.
'개혁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www.lovereformed.com)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개혁교회의 글들과 성경 해석을 소개하고 있으며, 2009년 11월에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유은교회'를 설립하여 이상적 개혁교회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1장. 도입 : 고정 관념 깨기 - 보편적 오해들

1.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 생활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라는 통념에 대하여
2.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마 18:18~20) - 기도에 대한 본문이 아님
3.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 -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성경적인가
4.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 믿는 자는 슈퍼맨?
5.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욥 8:7) - 사용할 수 있는 말씀인가
6.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간구한 것인가(창 18:16~33)
7. 빛과 소금 비유(마 5:13~16) - 교회의 역할은 부패 방지가 아니다
8.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 어떻게 예배한다는 것인가
9. 고린도전서 ‘사랑장’(고전 13장) - 사랑이 최고의 은사인가
10. 가인과 아벨의 제물(창 4:3~5) - 무엇을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2장. 인본주의적, 교육학/심리학적 해석들

11.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 회심의 주권이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게 만드는 악한 해석
12. 인본주의에 물든 오병이어(요 6:9~13) - 성경은 소년에게 관심이 없다
13. 열두 정탐꾼(민 13:25~33) - 긍정적인 보고? 부정적인 보고?
14.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7~9) - 적들에 대해 담력을 가져야 할까
15. 지붕을 뜯어내려 고침받은 중풍병자(막 2:1~12) - 아무도 친구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4~21) - 사랑만 나타났을까 ?언약의 복과 저주?
17. 엘리야와 칠천 명(왕상 19:10,14,18) - 엘리야의 도덕화/심리화에 대한 반대
18.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막 5:25~34) - 초점은 그녀의 믿음인가
1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신념을 가져라?
20.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딤전 2:4) - 만인구원설에 대한 반대

3장. 도덕적으로 읽어 본의를 훼손하는 예들

21. 사라와 하갈(창 21:8) - 본처와 첩의 갈등 이야기일까
22. 어머니를 선택한 룻(룻 1:1~18) - 룻은 착한 며느리의 표본일까
23. 사무엘의 출생(삼상 1:20) - 불임 여성이 자녀를 얻은 이야기인가
24.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 - 에스더를 신앙 여성의 모범으로 볼 수 있는가?
25.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삼상 18:3~4) -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인가
26.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이유(대상 22:8, 왕상 5:3) - 살인을 했기 때문에?
27. 솔로몬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왕상 1:11~14, 왕상 2장)
28.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14) -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을까
29. 노인의 교도를 버린 르호보암(왕상 12:6~15) - 성경은 경로사상을 가르치는가
30. 벧세메스로 가는 소(삼상 6:12) - 소처럼?

4장. 목회적 목적을 위해 왜곡하는 예들

31.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 직분자의 충성을 요구하는 본문인가
32.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 - 교회 봉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33.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3) - 빈 복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34. 로데의 말에 반문한 사람들(행 12:15) - 기도 해 놓고 믿지 않았다는 예에 쓸 수 있을까
35.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되는 경우
36.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 “교사”는 누구인가
37. “안식일에 내 발을 금하여”(사 58:13) - 주일 성수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38.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 1:21) - 예수님이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39. 바나바 세미나가 말하는 바나바(행 14:1,4,14) - 바나바는 평신도였나
40. 죄는 하나님께만 해결하면 끝나는가?(레 6:1~7)
41. 2계명의 의미와 한국 교회의 전반적 우상 숭배(신 4:12,15,19; 출 20:4,23)
42.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시 96:1) - 열심히 새 찬양을 배워야 할까

5장. 기도와 전도에 대하여

43. “새벽 오히려 미명에”(막 1:35) - 새벽 기도의 창시자는 예수님?
44.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5) - 새벽 기도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45. “중언부언하지 말라”(마 6:7) -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46.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 전도에 대한 본문인가
47.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 - 전도할 때 부끄러워하지 마라?
48.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빌 1:18)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49.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 전도는 강제로 할 수 없는 노릇
50. “와서 보라!” 설교의 함정(요 1:39,46) - 전도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1장. 도입 : 고정 관념 깨기 - 보편적 오해들

 

1.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 생활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라는 통념에 대하여
2.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마 18:18~20) - 기도에 대한 본문이 아님
3.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 -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성경적인가
4.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 믿는 자는 슈퍼맨?
5.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욥 8:7) - 사용할 수 있는 말씀인가
6.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간구한 것인가(창 18:16~33)
7. 빛과 소금 비유(마 5:13~16) - 교회의 역할은 부패 방지가 아니다
8.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 어떻게 예배한다는 것인가
9. 고린도전서 ‘사랑장’(고전 13장) - 사랑이 최고의 은사인가
10. 가인과 아벨의 제물(창 4:3~5) - 무엇을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2장. 인본주의적, 교육학/심리학적 해석들

 

11.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 회심의 주권이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게 만드는 악한 해석
12. 인본주의에 물든 오병이어(요 6:9~13) - 성경은 소년에게 관심이 없다
13. 열두 정탐꾼(민 13:25~33) - 긍정적인 보고? 부정적인 보고?
14.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7~9) - 적들에 대해 담력을 가져야 할까
15. 지붕을 뜯어내려 고침받은 중풍병자(막 2:1~12) - 아무도 친구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4~21) - 사랑만 나타났을까 ?언약의 복과 저주?
17. 엘리야와 칠천 명(왕상 19:10,14,18) - 엘리야의 도덕화/심리화에 대한 반대
18.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막 5:25~34) - 초점은 그녀의 믿음인가
1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신념을 가져라?
20.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딤전 2:4) - 만인구원설에 대한 반대

 

3장. 도덕적으로 읽어 본의를 훼손하는 예들

 

21. 사라와 하갈(창 21:8) - 본처와 첩의 갈등 이야기일까
22. 어머니를 선택한 룻(룻 1:1~18) - 룻은 착한 며느리의 표본일까
23. 사무엘의 출생(삼상 1:20) - 불임 여성이 자녀를 얻은 이야기인가
24.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 - 에스더를 신앙 여성의 모범으로 볼 수 있는가?
25.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삼상 18:3~4) -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인가
26.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이유(대상 22:8, 왕상 5:3) - 살인을 했기 때문에?
27. 솔로몬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왕상 1:11~14, 왕상 2장)
28.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14) -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을까
29. 노인의 교도를 버린 르호보암(왕상 12:6~15) - 성경은 경로사상을 가르치는가
30. 벧세메스로 가는 소(삼상 6:12) - 소처럼?

4장. 목회적 목적을 위해 왜곡하는 예들

 

31.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 직분자의 충성을 요구하는 본문인가
32.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 - 교회 봉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33.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3) - 빈 복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34. 로데의 말에 반문한 사람들(행 12:15) - 기도 해 놓고 믿지 않았다는 예에 쓸 수 있을까
35.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되는 경우
36.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 “교사”는 누구인가
37. “안식일에 내 발을 금하여”(사 58:13) - 주일 성수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38.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 1:21) - 예수님이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39. 바나바 세미나가 말하는 바나바(행 14:1,4,14) - 바나바는 평신도였나
40. 죄는 하나님께만 해결하면 끝나는가?(레 6:1~7)
41. 2계명의 의미와 한국 교회의 전반적 우상 숭배(신 4:12,15,19; 출 20:4,23)
42.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시 96:1) - 열심히 새 찬양을 배워야 할까

5장. 기도와 전도에 대하여

 

43. “새벽 오히려 미명에”(막 1:35) - 새벽 기도의 창시자는 예수님?
44.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5) - 새벽 기도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45. “중언부언하지 말라”(마 6:7) -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46.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 전도에 대한 본문인가
47.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 - 전도할 때 부끄러워하지 마라?
48.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빌 1:18)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49.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 전도는 강제로 할 수 없는 노릇
50. “와서 보라!” 설교의 함정(요 1:39,46) - 전도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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